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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둥지를 튼 사람들 - 이광남·안미현 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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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둥지를 튼 사람들 - 이광남·안미현 씨 부부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8.01.08 13:15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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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이 아닌 꿈을 파는 농원입니다”

오늘은 이광남(39·꿈을 파는 버섯농장)·안미현(39) 씨 부부를 소개한다. 이들은 3년 전 대치면 형산리로 귀농해 표고버섯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귀농 전 철저한 준비와 귀농 후 선배 농업인들의 조언, 그리고 꾸준한 영농교육과 정보 수집을 토대로 차근차근 성공농업을 일궈가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치열한 도시의 삶이 싫었다
이씨는 서울 토박이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한국카네기연구소에 입사해 10여년, 인크루트주식회사로 자리를 옮겨 1년간 근무하다 2015년 11월 청양으로 왔다. 또 부인 안씨는 청양이 고향으로 대학 졸업 후 역시 카네기연구소에서 10여년 근무하다 과감히 직장을 사직하고 남편을 따라 내려왔다. 둘은 직장 선후배로 9년 전 결혼했다.
이들은 인력개발 및 경영컨설팅 업무를 오래한 전문가다. 발전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귀농을 선택했다. 도시의 삶에 지쳐서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너무 힘들어 귀농을 결정하고 차근차근 어떤 농사를 어디 가서 지을지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렇게 찾은 것이 표고버섯농사였습니다. 사실 표고버섯을 검색하니 청양, 장흥, 부여 등 여러 곳이 나오더군요. 꼼꼼히 살폈고, 최종적으로 청양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후 서울과 청양에서 귀농 관련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씨는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표고버섯 농사를 선택한 것이라고도 전했다. 햇볕을 피해 하우스 안에서 일할 수 있고 또 사계절 농사이기 때문이다.

귀농제안서 작성해 아내 설득
귀농에 앞서 이씨는 A4 용지 30쪽 분량의 귀농제안서를 작성해 부인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그 속에는 도시생활의 어려움, 귀농 후 계획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단다.
“사실 청양으로 오겠다고 하자 장인 장모님께서는 아는 체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렵게 공부하고 왜 시골로 오냐는 걱정이셨죠. 농사가 말처럼 쉬운 줄 아냐는 충고셨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안서를 보고, 본인도 10년 넘게 직장을 다니다 보니 내려놓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허락했죠. 그래서 2015년 봄 사직서를 냈고, 교육을 받은 후 그해 11월 귀농을 했습니다.”
이렇게 청양군민이 된 그는 우선 혼자 내려와 기술센터와 면사무소 등을 다니며 이것저것 문의했다. 그리고 면사무소의 소개로 집과 땅, 하우스 등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버섯 체험장 운영 목표로 전진 
그는 우선 몇 개월여 준비기간을 거쳐 2016년 3월 표고버섯 배지재배를 시작했다.
“3만개 정도를 3단으로 넣었고, 그해 6월부터 수확했어요. 그리고 1년 여 후인 지난해 추석 때까지 약 6000만 원 정도 수입을 올렸습니다. 아직 순수입을 따질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조금씩 더 늘려 5만개 정도까지만 키워보려고요.”
주변인들은 이들 부부를 보고 참 대견하다고 말한다. 귀농 전 이들의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초보 농사꾼으로서 첫 매출로 연간 6000만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농장이름을 ‘꿈을 파는 버섯농장’으로 지었어요.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앞으로 이뤄가고 싶은 꿈도 함께 팔겠다는 뜻입니다. 생 표고버섯에 더해 2016년에 건조기 지원을 받아 가루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블로그와 쇼핑몰도 운영 중입니다. 이렇게 곳곳에 홍보를 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자리가 잡히고 나면 버섯체험장도 운영 해 보고 싶은 소망입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앞으로도 최선
이들은 귀농 후 느낀 점도 전했다. 특히 교육이 단계별로 진행되면 좋겠단다.
“농사관련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교육이 단계별로 진행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강소농을 위한 것이라면 1년차, 2년차 등으로 나눠 받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이들은 수입 등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아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귀농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해 추석 즈음해서 장인어른께서 쓰러지시고 또 저희 어머니께서도 항암 투병에 들어 가셨어요. 그래서 마음으로 조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잘될거야 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합니다. 한동안 어려움은 있겠지만 서울에서의 삶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아내도 경제적으로 조금 쪼들릴 뿐이지 다른 것은 모두 좋다고 하고요. 특히 제가 30대에 귀농을 서둘렀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어요.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땅을 밟고 뛰어놀면서 너무 즐거워하고 적응을 잘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더함도 덜함도 없이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이광남·안미현 씨 부부는 슬하에 서연(8) 양과 희찬(6) 군을 두고 행복한 귀농생활을 일궈가고 있다. 또 ‘버섯이 아닌 꿈을 파는 농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앞으로도 열심히 뛰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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