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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 보내는 겨울 … 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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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 보내는 겨울 … 정초
  •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 승인 2018.02.26 11:43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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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동대문스케이트장에서 딱 한 번 신어본 검은색 스케이트는 앞과 뒤에 길고 날카로운 칼날이 있었습니다. 뾰족한 칼날위에서 부들부들 떨다 내려온 1~2분이 전부였던 스케이트의 기억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떠오릅니다.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와 보름 이상을 함께한 평화의 올림픽이 끝나가는 것처럼, 무궁무진할 듯했던 겨울도 끝나갑니다.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고 봄을 반기는 비가 온다는 우수를 맞은 날에는, 여기저기서 버들강아지 봉우리가 피어 봄소식을 전해준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알려줍니다. 오늘은 얼음을 뚫고 활짝 핀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앙증맞은 수술을 다 내보이며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추위와 미끄럼으로 겨우내 집안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쌀쌀하게 살을 베며 콧물을 훌쩍이게 하던 바람이 아니라 다소 누그러진, 한 풀 꺾인 듯이 불어오는 바람은 얼굴에 닿는 감촉까지 순하게 느껴집니다.
살짝 얼음이 걷히고, 얼음 밑에서 흐르는 맑은 물에 잎 없는 나무가 흔들립니다.

서서히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정초입니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부터 열나흗날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정초에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은, 1년 동안 가족의 건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안택을 하고, 각자의 운수와 재수를 알아보고 대비하기 위한 토정비결을 봅니다. 산신제를 지내고, 미처 세배를 드리지 못한 어르신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지난해 농사지은 것이라며 강원도에 사는 친구로부터 땅콩이 한 봉투 왔습니다. 초록 잎이 나와 자라서 땅콩을 캐는 동안 풀 한포기 뽑아주지 못해 미안하였지만, 설날 준비하느라 바쁘더니 금방 정월 대보름이라며 보름날 아침에 부럼으로 사용하라하여 넙죽 받았습니다.

경칩을 몇 날 앞두고 정월 대보름이 있습니다.
풍작과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며, 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우고, 일 년 동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으며 움츠렸던 몸에 생기를 주는, 설날만큼이나 중요한 날이지요.

대보름날 아침에는, 귀가 밝아지고 일 년 내내 즐거운 소식을 듣고자 귀밝이술인 데우지 않은 청주 유롱주를 마시고, 몸에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말고 이가 단단해지라고 땅콩과 호두 등 견과류를 나이만큼 깨무는 부럼 깨물기와, 여름철 무더위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더위를 팝니다. 아랫집 순영이는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더위를 먼저 팔려고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곤 하였습니다.
앞산위로 커다랗고 노란 둥근달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다리가 튼튼해지라고 교월리다리를 나이만큼 건너기도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달의 모양이나 색, 크기나 기울기, 높낮이를 보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하였으며, 절을 하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백세공원의 앞냇물은 바람의 기운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꽁꽁 얼어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조심조심 얼음위를 걷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놀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단단하게 냇물이 얼면 얼음을 크게 잘라 얼음배를 만들어 타기도 했습니다. 물에 빠질 것이 무서워 얼음배를 타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부러워하며 구경만 하였습니다. 
가끔은 지금 어린이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이를 하며 보냈던 어린 시절이 소중해집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감히 꿈에도 꾸지 못했던 놀이로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겨울이 끝나고 다시 무궁무진 할 듯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추위는 잊은 채,
봄을 생각하며, 봄을 기다리며, 봄을 맞이할 나무를 봅니다.
겨울바람 견디며 잘 버텨준 나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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