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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포(午砲)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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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포(午砲) 세대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03.12 15:08
  • 호수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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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서울시 금천구(장평면 적곡리 출신)

전기가 없고 시계도 귀하던 시절
산골 농부의 하루는 해가 기준으로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잤다
새벽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와
은산에서 두 번 울리는 오포소리가
보조를 맞춰 주었다

새벽 네시 반, 교회 새벽종이 울리면
어른들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일어나 새벽밥을 지어
막내 아들 학교보내고
형님은 가마솥에 불을때 소죽을 끓이고
아침밥을 먹는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오직 부지런만이 밥 굶지않고 살 길이니
훤해지면 들로나가 일을하다
정오에 은산에서 오포 소리가 들리면
집으로 돌아와 보리밥 한 술을 뜨거나
혹 해 짧은 봄날엔 건너 뛰기도 했다

저녁 무렵 땅거미가 지고 어두워지면 돌아와
소, 돼지, 염소 등 가축의 먹이를 챙기고
닭, 토끼는 살쾡이(삵) 염탐도 막아야 했다
간드레는 언감생심, 등잔불 아래 저녁을 먹고
때론 석유 기름이 아까워 일찍 불을 끄기도했다

몇 년 후 60년대 중반 인접 중학교에 입학하니
친구들의 대화는 라디오 오락프로그램 이야기
소외감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를 보채

서울 매형한테 부탁 라디오를 얻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으며
그 날부터 우리집은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다

정유년을 지나 황금 개띠란 무술년을 몇 일 앞두고
지나간 세월이 아쉽기는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오포(五抛)가 아닌 오포(午砲)세대다


은산 - 부여군 은산면소재지 동리이름
오포 - 정오와 자정에 울리던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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