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7 17:12 (수)
민종식 의병장, 12월의 호국인물 선정
상태바
민종식 의병장, 12월의 호국인물 선정
  • 김홍영 기자
  • 승인 2018.12.10 13:10
  • 호수 1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족 참석한 가운데 현양식 엄숙히 거행
▲ 전쟁기념관에서 민종식 의병장 현양식이 열렸다.

홍주 의병을 이끌었던 민종식(1861. 3 ~ 1917. 6. 26)의병장이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지난 6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현양식을 갖고, 선생의 나라사랑을 기렸다.
이날 현양식에는 박삼득 전쟁기념관장, 선생의 고손자인 민수홍(서울) 씨 등 유족, 청양군 문화체육관광과가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민종식 의병장은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으며, 1882년에 과거에 급제한 후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정산면 천장리로 낙향한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계획하여 항일운동 전면에 나섰다.
선생은 격문과 각국 공사관에 보내는 청원문을 작성하고 1906년 6월 의병을 일으켰는데, 홍주 근방 합천에서의 첫 번째 전투는 그 성과가 미미했으나 충청도 홍산에서 최익현, 임병찬 등과 연합하여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이후 서천, 비인, 판교를 거쳐 남포에 이르렀을 때의 군세는 1만여 명으로, 을사의병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어 보령, 청양 등 충청남도 서부 일대를 점령하고 서부의 중심지인 홍주를 점거하면서 을사의병의 3대 전투의병(신돌석 진영, 정용기ㆍ정환직 진영)으로 그 기세를 드높였다.

홍주성에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선생은 몸을 피해 청양, 온양, 공주 등지에서 저항하며 수차례 일제의 추적에서 벗어났으나 11월 공주에서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사형을 면하고 순종 즉위기념 특사로 풀려났지만 구금 중 얻은 후유증으로 1917년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